2 “한국 선 안될 걸… 편견에 대한 도전이죠” 2009.12.15

‘가장 미국적인 이야기’ 주변 만류 뿌리치고 선택
장장 4개월 달려 나가는 무대, 스타 마케팅도 도입
가수 제시카·김종진 캐스팅 작품 한층 더 빛나게
첫 라이선스 뮤지컬 도전서 무비컬을 배워


◇뮤지컬 ‘금발이 너무해’로 라이선스에 첫 도전하는 장유정 연출가. 그는 “캐릭터, 구성은 그대로 가지만 우리 식에 맞게 장면 장면마다 변화를 줬다”고 말했다. 아시아에선 처음으로 한국에서 공연되는 작품은 2001년 영화에 이어 2007년 미국 브로드웨이까지 진출하며 큰 인기를 모았다.
‘도전’이기에 과감히 선택했다. 뮤지컬 ‘금발이 너무해’를 연출하겠다고 했을 때 주변에선 만류가 컸다. 미국적인 이야기가 뉴욕 브로드웨이에서처럼 한국에서 통할까, 어느 누구도 선뜻 답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장유정(33) 연출가는 택했다.
“주인공 엘 우즈에게 끌렸어요. 금발에 훌륭한 외모를 지녔지만 그것 때문에 다들 그녀를 멍청하다고 생각했죠. 엘 우즈는 주변의 그러한 인식에 굴하지 않았어요. 자기에 대한 편견을 깨는 그 ‘용기’에 찬사를 보내고 싶더라고요.”
개막을 코앞에 둔 9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아티움에서 장 연출가를 만났다. 막 제작진에 ‘철야’라는 통보를 내리고 나오는 길이었다. 7개월 된 아기와 집에서 고군분투하는 남편에겐 “내일 출근 전 속옷을 갖다 달라”는 부탁도 했다. “여형사 수준의 부인”이라며 웃었다.
대본과 음악만 브로드웨이에서 가져와 장유정표 뮤지컬로 새롭게 태어날 준비에 한창이었다. 미국 문화에서만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은 걷어내고 대신 드라마 부분을 튼튼히 구축했다. 동시에 조연도 돋보일 수 있도록 캐릭터 설정과 동선에 변화를 줬다. ‘금발이 너무해’의 큰 장점이기도 한 화려한 쇼도 국내 무대에서 살아날 수 있도록 무대장치에 대한 욕심도 굽히지 않았다. 제작비엔 부담이었지만 ‘무대 아래서 위로 솟는’ 장치도 설치했다.
“한국적으로 풀어냈기보다는 동시대적으로 느낄 수 있는 부분들을 강화했다는 게 맞는 표현이에요. 오히려 대본과 음악만 가져왔기 때문에 무대·의상 같은 건 똑같이 하면 안 돼요. 라이선스이긴 하지만 창작해야 할 부분도 있는 거죠. 비켜가기가 더 힘들었어요.” 

◇‘금발이 너무해’의 여주인공으로 트리플 캐스팅된 이하늬, 제시카, 김지우(왼쪽부터).
14일 개막하는 무대는 장장 4개월 동안 달려가야 한다. 스타마케팅도 도입했다. 뮤지컬 관객 확대 차원에서다. 엘 우즈역에 그룹 소녀시대의 제시카가 캐스팅됐다. 바람기 다분한 ‘캘러한 교수’ 역엔 봄여름가을겨울 리드보컬 김종진이 첫 뮤지컬에 도전한다. 정 연출가는 “작품에 따라 ‘스타’의 출연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고 했다. “대신 그 작품에 정말 잘 맞는 스타여야 한다”고 조건을 붙였다.
“제시카의 춤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최고였어요. 제시카가 엘 역에 들어오면서 이하늬, 김지우와 함께 세 가지 색깔의 엘이 탄생하게 됐어요. 이하늬의 엘은 전반적으로 탄탄하고, 김지우의 엘은 2막에서 도드라지는데 성숙해지는 과정을 굉장히 잘 그려내요. 제시카의 엘은 발랄한 면이 돋보이죠.”
김종진 역시 후반에 들어서면서 작품에 ‘안착’했다. “낭만적 분위기를 드러내는 데 김종진밖에 떠오르지 않았다”는 그는 “가슴 울리는 목소리가 무대를 한층 빛나게 한다”고 했다.
작품에 담긴 내용처럼 ‘도전’하는 사람들의 무대다. ‘김종욱 찾기’, ‘오! 당신이 잠든 사이’, ‘형제는 용감했다’ 등 창작 뮤지컬에서 중심을 잡고 있는 장 연출가에게 ‘라이선스 뮤지컬’은 어떤 의미였을까 궁금했다.
“첫 라이선스 작품이었는데 운 좋게 두 가지를 배웠죠. 드라마, 음악이 정말 하나가 돼서 캐릭터를 만들어 내는 걸 보고 감탄했어요. 여기에 100신이 넘는 영화를 20신 정도의 뮤지컬로 만들어내는 ‘무비컬’이란 것에 대해 다시 한번 공부하게 됐죠.”
물론 두렵기도 하다. 그래도 그의 삶에서 ‘도전’을 놓고 갈 수 없다. 익숙한 것을 버려야하지만, 도전을 하고 나서 맛보는 그 ‘벅차오름’이 다시 또 길을 나서게 만든다. 여행이 가르쳐준 지혜이기도 하다.
“국경 넘는 걸 좋아해요. 비행기 대신 버스나 기차 혹은 자전거 타고 가는 걸 좋아하는데, 몽골에선 중국으로 갈 때 말을 타고 간 적도 있어요. 뭔가 찍고 넘어가야 ‘넘는다’란 의미가 몸에 배더라고요. 비행기는 옮겨가는 거라 밋밋하잖아요. 인도에서 2개월 정도 있다가 네팔을 넘어갈 때는 심지어 무섭기도 했어요. 하하. 다른 곳에 간다는 공포가 찾아오더라고요. 이런 감정들을 깨는 걸 여행에서 배운 거죠.”
이 작품을 끝내고 나면 벌써 다음 도전이 기다리고 있다. 스릴러같이 장르에 충실한 뮤지컬을 해보고 싶다. ‘도전’의 연속이다. 혹 결과가 두렵지 않을까. 그는 “‘도전’만을 두고 ‘성공과 실패’를 평하는 건 불공정한 게임”이라고 했다.
“외부적인 평가는 있을 수밖에 없지만 그건 자기 몫이 아니죠. 최선을 다하고 그 안에서 행복을 느끼는 게 ‘도전’의 가치예요. 사랑을 두고 성공과 실패를 논할 수 없잖아요. 결혼을 했다고 그게 사랑의 성공일까요? 아니잖아요. 그것만으로 의미가 있는 거죠. 하하.”

윤성정 기자 ys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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