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뮤지컬은 지금 '대중화 작업 중' 2009.12.23

검증받은 영화, 베스트셀러, 드라마를 무대로…
관객 입맛에 맞춘 인기작품 가져와 '브랜드 파워' 활용 가치 극대화
익숙한 것에 지갑 여는 심리 이용…유명작품으로 리스크 줄이기 속셈도


뮤지컬이 본격적인 ‘대중화’ 작업에 들어섰다. 과거엔 예술의 한 장르로 소개됐다면, 이제는 점점 늘어나고 있는 관객을 붙잡기 위해 본격적인 대중문화로서 모양새를 갖춰가고 있다. 대중이 원하는 입맛을 맞추기 위해 국내 무대는 다른 장르에서 검증받은 작품을 가져오기에 분주하다. 콘텐츠가 지니고 있는 브랜드파워를 활용해 부가가치를 극대화하겠다는 계산이 깔린 것. 이미 유명해진 작품을 가져오면 새로운 작품에서 오는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원종원 뮤지컬 평론가는 “뮤지컬은 티켓 가격에 대한 부담이 있기 때문에 소비자 역시 선택에서 신중할 수밖에 없고, 낯선 것보다는 낯익은 것에 지갑을 여는 심리가 있다”면서 “뮤지컬은 몇 회로 끝나는 게 아니라 몇 달 동안 진행되기 때문에 관객을 동원해야 하고, 이런 점에선 관객들이 알고 있는 이야기가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이미 뮤지컬이 발달한 시장에선 ‘가져오기’ 작업은 기본이다. 이젠 원작을 어떻게 무대로 가져와 새로운 재미를 창출하느냐가 관건이다. 단순히 원작에 기대서 재현하는 수준이면 곤란하다. 주변으로 눈을 돌린 국내 뮤지컬이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MBC 다큐 ‘사랑’에 소개된 사연을 무대로 옮긴 ‘엄마의 약속’.
◆방송이 무대로 옮겨오다=대중의 입맛을 이미 잘 아는 ‘방송’은 뮤지컬 소재의 보물창고다. 시청률 40%를 넘어선 MBC드라마 ‘선덕여왕’ 역시 인기에 힘입어 뮤지컬로까지 제작된다. 연출을 맡은 김승환 MMCT 대표는 “국민 공감대가 검증된 작품인 만큼 관객에게 쉽게 다가설 수 있는 매력이 있다”면서 “관점을 좀 더 보편화해 1300년 전 한반도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췄다”고 말했다. 그는 “해외 진출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덧붙였다.

드라마에서 무대로 온 ‘선덕여왕’(2010년 1월5∼31일·우리금융아트홀)은 현대적인 코드로 드라마와 차별성을 뒀다. 수십 대의 LED TV로 축조된 첨성대가 선보이고, 넘버 28곡은 월드뮤직 느낌을 살렸다. 신라의 화려함은 디자이너 이상봉의 퓨전 스타일로 재창조된다.

MBC 다큐멘터리 ‘사랑’에서 소개된 고 안소봉씨 사연을 무대로 가져온 ‘엄마의 약속’(31일까지·대학로 스타시티)은 제작사 하늘연어가 대표작으로 키워 가고 있는 중이다.

“실화를 통해 가족의 사랑을 설득력 있게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제작을 하게 됐다”고 소개한 하늘언어 조재국 대표는 “안소봉씨의 딸은 이제 네 살이지만 작품에선 열일곱 살 여고생으로 그려내 감동과 재미를 같이 전함으로써 다큐멘터리와는 다른 측면에서 이야기를 풀어냈다”고 했다.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수정작업은 필수다. 다큐멘터리에서 보여줬던 이야기를 상당 부분 빼고, 부부의 진솔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도록 드라마적인 부분을 보완할 계획이다. 공연은 내년에도 계속될 예정이다.

◆책에서 우리 이야기를 꺼내다=뮤지컬 전성기를 맞아 소재 고갈에 시달리는 현 시점에서 ‘베스트셀러’는 또 다른 탈출구가 되고 있다. 특히 무한한 레퍼토리를 지니고 있는 책은 색다른 소재를 가져오기에 좋은 창구다. 뮤지컬 ‘퀴즈쇼’(2010년 1월12일까지·예술의전당)는 김영하의 장편소설을 토대로 뮤지컬의 인기 소재인 로맨스에서 벗어나 사회적 이슈인 청년실업 문제를 꺼내든다.

젊은 백수로 살아가는 스물일곱 민수의 삶을 통해 냉정한 사회 속에서 홀로 서야 하는, 이른바 인터넷 세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무대로 온 ‘퀴즈쇼’는 뮤지컬 어법에 맞게 결말을 달리했다. 소설과 달리 공감대를 넓히기 위해 무기력한 주인공 민수에게 ‘의지’를 부여한 것. 돈을 벌기 위해 들어간 회사에서 부조리한 일들을 목격한 뒤 소박한 삶을 선택하는 민수의 모습을 통해 한 20대 청년의 성장기를 뚜렷한 어조로 담아냈다.

지난달 말부터 무기한 일정으로 공연 중인 ‘연탄길’(명보아트홀)은 이철환 작가의 동명 산문집을 무대화했다. 이미 400만부 이상 판매되면서 탄탄한 이야기 구조를 검증받은 작품에서 6가지 에피소드를 뽑아 4개의 이야기로 만들었다.

안지영 조아뮤지컬컴퍼니 기획팀장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꾸준하게 사랑을 받은 책인 만큼 무대로 넘어와도 관객에게 책이 갖고 있는 따뜻함을 전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에서 출발했다”고 말했다. 뮤지컬 ‘연탄길’은 원작은 충실히 따라가되, 인형, 마임 등 무대적 장치를 통해 다른 모습을 꾀한다.

◆영화를 라이브로 보다=영화는 뮤지컬의 단골 소스다. ‘웨딩싱어’(2010년 1월31일까지·충무아트홀), ‘금발이 너무해’(2010년 3월14일까지·코엑스아티움)는 영화에서 브로드웨이 뮤지컬로 제작된 작품을 대본·음악만 가져와 국내 정서에 맞도록 바꿨다. 우리 식으로 본 영화다.

‘웨딩싱어’의 최성신 연출가는 “우리 정서에 맞게끔 주변 캐릭터를 살리고 번역과정에 많은 공을 들였다”고 말했다. 더블 캐스팅된 배우 황정민, 박건형을 통해 뻔한 사랑이야기를 유쾌하게 풀어낸 무대는 영화와는 달리 관객 타깃을 중·장년층까지 넓혔다. 제작사 뮤지컬해븐은 처음 20·30대 관객 취향에 맞춰 제작된 포스터를 두 배우를 전면으로 내세우면서 다시 제작, 중·장년층 관객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금발이 너무해’ 역시 작품에 담긴 서양의 문화 코드가 장유정 연출가의 손길을 거치면서 한국적 상황에 맞는 코믹으로 재탄생했다. 관객 확보에 나선 무대는 걸그룹 소녀시대 제시카를 트리플 캐스팅 중 한 명으로 선택해 10대 관객을 끌어들이는 한편, 핑크빛 색채를 살린 무대와 프로그램으로 20·30대 여성 관객의 입맛에도 맞췄다.

이동현 PMC 홍보팀 대리는 “국내 관객을 고려해 브로드웨이 프로그램과는 다른 버전으로 표지부터 속지까지 핑크빛으로 꾸미고, 한 편의 공연을 보듯 사진편집에도 신경을 썼다”면서 “만족도가 높아 프로그램 판매량도 다른 공연에 비해 월등히 높다”고 했다.

윤성정 기자 ys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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